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📝시작반 2/4 기록주제 : 자율주제
언젠가부터 낯가림이 심해졌다.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얼굴이 빨개졌다. 나 갑자기 왜 이러지?
3년 전, 코로나가 한창일 때 취업을 했고, ‘서울’이라는 낯선 곳에서 자취를 시작했다. 나는 어딜 가나 FM소리를 듣는 사람이기에 그 타이틀에 걸맞게 누구보다 방역수칙을 잘 지켰다. 그리고 당연히 사람도 별로 만나지 않았다. 그렇게 나는 점점 집순이가 되어갔다.
새로운 나의 집에 완전히 적응을 했을 때쯤 회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. 그가 내 근처에 머물 때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. 순간 저 사람이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거라고 착각하면 어떡하나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.
또 언젠가 대표님이 나를 불러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을 때였다. 갑작스러운 부름에 긴장한 나는 또 얼굴이 빨개졌는지 대표님께서 나를 보시고는 “너는 왜 내가 부르기만 하면 얼굴이 빨개지니?”라며 장난을 치셨다. 흑. 나는 딱히 받아칠 말이 없어 “아... 긴장해서요... 하하;”라고 대답을 흐리며 빠른 걸음으로 내 자리로 돌아갔다.
그 사건 이후로 자꾸만 얼굴이 빨개지는 내가 점점 싫어졌다. 어차피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왜 나는 자꾸 낯을 가리는 건지, 이놈의 얼굴 색깔은 왜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는 건지 짜증이 났다.
그렇지만 그렇게 짜증을 내다가도 결국 바뀌어야 되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.
그래. 내가 바뀌어야 돼.
이렇게 살다 간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내가 낯가림쟁이에 소심보스라는 걸 다 알아차리고 말 거야! 이제부터 낯가림 없애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. 그 누구도 날 무시할 수 없어!
그때 이후 평소 눈여겨보던 블로그 이웃님이 주최하시는 독서 모임을 신청했다. 아 근데 아직은 좀 무서우니까 온라인으로. 독서모임에서는 2주에 한 번씩 줌을 통해 토론을 했다. 온라인으로 얼굴을 마주 보고 내 이야기를 하는데도 내 얼굴은 또 붉게 달아올랐다. 그렇지만, 이런 내 붉은 얼굴을 보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.
그 이후로도 12월과 1월에는 오프라인 독서 모임 한 번, 오프라인 새해 기록모임 한 번, 온라인 줌 모임 두 번 정도를 더 나갔다.
물론 오프라인 모임에선 또 얼굴이 새빨개졌지만, 그래도 모임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엔 내가 준비한 말은 다 하고 왔다는 생각에 굉장히 뿌듯했다. 그리고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겼다. 사람 만나는 거 뭐 별거 아니네!
그렇게 자신감이 생긴 나는 2월에는 또 무슨 모임을 신청할까 sns를 돌아다니다가 평소에 구독하고 있던 말많은소녀님이 기록모임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. 그리고 주저 없이 바로 신청했다.
2024년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볼 예정이다.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낯가림이 없어지지 않을까 싶어서. 남들은 이게 무슨 계획이냐며 나를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, 이건 나에게는 정말 큰 도전이자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한다.
아무튼 부디 올해 말에는 낯가림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으면 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.